Culture

[한국 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①] 내숭: 혼밥 위에 놓인 완벽한 휴식

김연수 기자
2026-02-13 12: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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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①] 내숭: 혼밥 위에 놓인 완벽한 휴식 (출처: 김현정, <내숭: 완벽한 밥상>, 130x162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쥬, 2013.)

요즘 한국 사회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끝없이 설파한다. 회사는 개인의 워라밸을 말하고, 매체는 혼밥과 혼술을 새 시대의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 뒤에는 지친 몸과 마음이 있다. 혼자 먹는 밥은 자유라기보다, 함께 밥 먹을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노동 구조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돌보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비용은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탈진한 사람들이 붙잡는 것은 값비싼 휴양지가 아니라 배달앱의 화면이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사회가, 실제로는 최소한의 휴식까지도 개인의 자기관리 능력으로 환원시키는 이 모순이 나는 불편하다.

한국화가로서 이 불편함을 사적인 한 끼의 장면으로 옮기고 싶었다. 전통적인 병풍이나 연회상이 아닌, 우체국 택배 박스를 식탁 삼아 짜장면과 탕수육을 마주한 여인. 한복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었지만, 자세는 전혀 단정하지 않다. 바닥에 비스듬히 기대어 한쪽 다리를 쭉 뻗은 채, 그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짧은 영상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이 모습은 우리가 광고에서 보는 ‘힐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어정쩡한 순간에야말로 진짜 휴식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느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식탁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허락된 비공개 무대. 작품〈내숭: 완벽한 밥상〉은 그 무대 위에 앉은 한 사람의 ‘나’를 전면에 세운 그림이다.

이 그림의 핵심은 택배 박스다. 일회용 상자인 이 박스는 우리 삶의 일시성과 즉흥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오늘 집 앞에 쌓였다가 내일이면 사라지는 골판지 더미처럼, 우리의 휴식도 항상 임시방편 위에 놓인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내일 아침을 걱정하며 먹는 늦은 밤의 한 끼. 가족을 위해 차리는 상이 아니라, 지친 몸을 간신히 추스르기 위해 고른 메뉴들의 조합. 짜장면의 검은 소스와 탕수육의 기름진 광택은 건강과 절제의 미덕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식사는 분명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작은 의식이다. 숏폼 영상이 자동 재생되는 스마트폰 화면은, 생각을 멈추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신호처럼 끊임없이 흔들린다. 여기서 완벽함이란 맛과 영양의 균형이 아니라, 잠시라도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정신의 공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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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 ①] 내숭: 혼밥 위에 놓인 완벽한 휴식 (출처: 김현정 아트센터)

사회가 상상하는 완벽한 식탁은 여전히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풍경이다. 그 식탁 가운데에는 늘 어머니가 있다. 끊임없이 음식을 채우고, 식어버린 반찬을 데워오고, 취향이 다른 가족들을 위해 메뉴를 나눠 담는다. 그 수고로움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이라는 미덕으로 장식된다. 하지만 그 수고에는 보상이 없다. 휴식 시간을 조정해 주지도, 가사노동의 몫을 나누어 주지도 않는다. 나는 이 책임 없음이 싫다. 그래서 〈내숭: 완벽한 밥상〉에서 여인은 더 이상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호명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오늘을 버틴 한 사람의 ‘나’로서, 자기 취향의 밥상을 마주한다. 이때 완벽함이란 타인의 기대를 채운 정도가 아니라, 잠시나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인 시간의 밀도를 뜻한다.

제목 속 ‘내숭’이라는 단어는 이 장면을 다시 뒤집는다. 바깥세상에서 그는 절제된 말투와 단정한 몸가짐으로 자신을 관리하며 살아간다. 회식 자리에서는 “배불러요”라고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사무실에서는 늘 바쁘지만 침착한 얼굴을 유지한다. 그러나 문을 닫고 혼자 남은 순간, 비로소 숨겨 두었던 식욕과 취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탕수육 위에 소스를 듬뿍 붓고, 그릇 바닥의 짜장까지 깨끗이 긁어 먹는 이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는 단아함과는 어긋난다. 나는 이 어긋남을 부끄러운 실수로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에서야 사람의 욕망이 정직해진다고 믿는다.〈내숭: 완벽한 밥상〉에서는 단정한 자아의 가면을 벗기고 허기를 드러낸다. 완벽함은 더 이상 흠 없는 이미지가 아니다. 남의 시선을 잠시 벗어난 자리에서, “오늘도 잘 버텼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권리, 그 작은 권리를 되찾는 행위가 바로 이 밥상이 묻는 질문이다.

글_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