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은 뉴스에서 사라져도 끝나지 않는다. 부모가 겪은 참사의 상처는 자녀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KBS ‘시사기획 창’은 재난을 경험한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 세대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추적한다. 부모의 고통은 자녀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 대물림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는지 질문을 던진다.
오래전 국가 폭력으로 인한 참사부터 최근 재난의 생존자와 유가족, 그들의 2세대까지 만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학, 경제학, 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를 통해 트라우마 대물림의 단서를 살폈다.
특히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과 합동 연구팀을 꾸려 우리나라 최초로 재난 경험자 부모를 둔 자녀들의 뇌를 분석했다. 부모의 트라우마가 자녀의 몸에 어떤 흔적으로 남았는지 살펴보고, 이른바 ‘재난 상속’의 실태를 추적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고 돌아온 한 아버지는 이후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스스로를 학대했고, 아내와 두 딸의 일상 역시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고 곁을 지키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생존자인 아버지와 어린 딸의 이야기도 전한다. 참사 이후 딸은 어느새 아버지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지금도 아버지를 위해 편지를 쓰고, 악몽을 꾸거나 혼자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딸은 아버지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차곡차곡 모아둔 딸의 편지를 들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부모의 고통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부모가 겪은 참사의 영향은 어디까지 미칠까. 취재진은 트라우마 대물림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일본 도호쿠 지역으로 향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일본인 남편을 잃은 한국인 여성과,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막내딸을 만났다.
일본에서는 대지진 직후 1년 동안 태어난 자녀 219명을 대상으로 10여 년간 장기 추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에서는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녀들에게서도 재난의 흔적이 발견됐다. 부모가 겪은 참사가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녀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제작진은 부모가 트라우마 고위험군인 가족을 대상으로 트라우마가 가족 안에서 전이될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에게서 트라우마 대물림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레이첼 예후다 박사는 이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또 국가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생존자와 유가족의 자녀들까지 지원하는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지원은 피해 당사자에게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를 살피는 과정에서 국가 폭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참사, 제주 4·3 사건의 2세대가 마주한 현실도 드러난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넘어 3세대에까지 이어질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시사기획 창’은 재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가족의 시간을 따라가며 ‘재난 상속’의 실태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짚는다.
허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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