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고 난 뒤에는 얘기를 길게 할 필요 없다.” 김경문(67) 감독의 말은 짧았지만 무겁게 울렸다.
개막 전 아무도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예상하지 못했다. 만년 하위권이던 팀이 정규시즌 2위로 마감하고 19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한화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김 감독은 4차전 역전패를 언급하며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강조했다. “어린 선수들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분명 어린 선수들이 나중에 더 좋은 모습으로 한화를 강팀으로 만들 거다. 좋은 예방주사를 맞았다. 내년 준비 잘하겠다.”
3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LG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1-4 패배로 끝나자 한화 선수들은 말없이 더그아웃을 떠났다. 관계자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3루 쪽에서는 LG의 우승 세리머니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그 순간, 한화 더그아웃에는 단 한 명의 선수가 남아 있었다. 올 시즌 리그 최고 투수 코디 폰세(31)였다. 평소 유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난간에 기댄 채, 통역도 없이 홀로 경기장을 응시했다.
폰세의 2025 시즌은 눈부셨다. 29경기 180⅔이닝을 소화하며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 252탈삼진, WHIP 0.94를 기록했다. KBO리그 외국인 투수 역사상 최초로 4관왕(승리·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을 달성하며 전설이 됐다.
하지만 플레이오프가 5차전까지 가면서 당초 계획이 틀어졌다. 3차전 등판 후 중5일이 필요했던 폰세는 4·5차전에 나설 수 없었다. 6차전 불펜 등판 가능성도 5차전 패배로 사라졌다.
한참을 경기장을 바라보던 폰세는 결국 발걸음을 뗐다. 1루 쪽 한화 팬들은 박수로 그의 헌신을 치하했다. 메이저리그 복귀가 유력한 폰세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이것이 마지막 작별 인사였을지 모른다.
준우승의 아쉬움은 김서현에게 특히 컸다. 30일 4차전 ⅔이닝 3실점, 박동원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대역전패의 시발점이 됐다.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10월 1일 SSG전)에서도 9회 2아웃 이후 홈런 2방을 맞았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자책점 27.00을 기록했다.
“SSG전 때부터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다. 끝맺음을 잘하지 못했다. 안 좋은 모습이 너무 많았다.” 김서현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잘한 거긴 한데, 좋다고 평가는 못하겠다. 마지막 마무리가 너무 아쉬웠다.” 김서현은 벌써부터 내년 준비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11월 대표팀 평가전에 합류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식 우승 세리머니가 끝난 뒤, LG 선수들은 1루 쪽 한화 팬들을 향해 걸어가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황 물결의 한화 팬들은 박수로 LG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 순간만큼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감동이 경기장을 채웠다.
많은 한화 팬들이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 선수들을 응원했다. 9회말,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도 “사랑한다 최강 한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쳤다. 만년 하위권의 설움을 떨치고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한화 구단은 축포로 LG의 우승을 예우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스포츠맨십은 빛났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