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폭 왼쪽에 커다란 나무 거울이 있다. 거울 틀 꼭대기에서는 상서로운 동물인 서수(瑞獸)의 금빛 얼굴이 송곳니를 드러냈고, 옆으로는 금빛 용머리가 고개를 내밀었으며, 아래에는 단청 문양을 닮은 꽃 장식이 붙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떠 있는 것은 들여다보는 이의 얼굴이 아니라 'snow_white'라는 계정에 1분 전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이다. 푸른 산과 침엽수 숲을 등지고 파란 저고리 차림의 백설공주가 한 손에 파랑새를 앉히고 다른 손에는 빨간 사과를 들었다. 사진 아래 '2016 likes'의 숫자는 그림을 그린 해와 겹쳐 읽히고, 해시태그 줄은 #노르웨이 #휴식 #힐링여행 #셀스타그램으로 이어지다 '#행복해'로 끝난다.
제목은 동화 속 주문 '거울아 거울아'를 '인스타야 인스타야'로 비튼 언어유희다. 이 그림을 그린 2016년 봄, SNS마다 여행과 맛집 사진이 가득했고, 필자 역시 그 화면을 부럽게 넘겨 보다가 마법 거울의 자리를 SNS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동화 속 거울은 듣기 싫은 진실까지 말해 주었지만, 오늘의 거울은 편집되고 연출된 장면을 보여줄 때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왕비는 그 화려한 허상을 진실로 믿고 괴로워한다. 대중은 아마도 '누가 제일 예쁘니'를 대신해 '누가 제일 행복해 보이니'라고 묻고 있을 듯 하다. 비교의 잣대가 얼굴에서 삶 전체로 바뀐 셈이다.
그 '행복해 보이는' 사진의 뒷면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실린, 짝을 이루는 작품인 〈내숭: #백설그램〉에 담았다. 그 작품에서 백설공주가 있는 곳은 노르웨이가 아니라 자기 방이다. 산과 숲이 그려진 배경지 앞 높은 스툴에 걸터앉아 파랑새와 사과를 들고 포즈를 잡았을 뿐이다. 프레임 안에서는 북유럽 숲을 거니는 여행자지만, 프레임 밖에서는 구두 한 쪽을 벗어 던지고 맨발을 반대편 무릎에 걸친 생활인이다. 바닥 한쪽에서는 나무젓가락을 꽂아 둔 컵라면이 익어 가고, 반대편으로는 바퀴벌레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왕비가 질투한 노르웨이 사진은 애초에 방 안에서 찍은 것이었으니, 왕비는 가짜 여행을 믿고 진짜 짐을 싸는 중이다.
한복의 고상함과 비밀스러움에서 출발한 〈내숭〉 시리즈는 인물을 먼저 맨몸으로 그린 뒤 반투명한 한지로 한복을 지어 입혀, 단정한 겉옷 아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한다. 〈#백설그램〉의 노란 치마에 다리가 고스란히 비치듯, 왕비의 새침한 표정 너머로는 왕관을 쓰고도 손바닥만 한 화면에 휘둘리며 비교하고 상처받는 속내가 비친다. 발치의 캐리어는 그 질투 뒤에 숨은 세속적 욕망과 과시욕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SNS를 탓하거나 여행을 비웃으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백설공주도, 그를 시기하는 왕비도 모두 필자의 자화상이다. 필자 역시 정사각형 틀에 맞춰 보이는 부분만 서둘러 정리하는 날이 적지 않다. 보여주는 쪽에 설 때는 자기 프레임 밖을 감추고, 바라보는 쪽에 설 때는 남의 프레임 밖을 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를 만들고 또 그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며 비교의 굴레를 도는 사이, 우리는 어느 날은 배경지 앞의 백설공주가 되고 어느 날은 거울 곁의 왕비가 된다.
10월에는 개천절 연휴(3~5일)와 한글날 연휴(9~11일)가 잇따르고, 그 사이 사흘 연차를 붙이면 최장 아흐레까지 쉴 수 있다. 연휴가 길어질수록 피드에는 바다와 낯선 골목, 비행기 창밖 풍경이 차오르고, 타인의 휴가가 시시각각 휴대전화 속으로 배달된다. 그런데 쉬러 간 자리에서 구도를 잡고, 해시태그를 고르고, 올린 뒤의 반응을 기다리는 사이 쉼은 또 하나의 일정이 된다. snow_white의 게시물에 '#휴식'과 '#힐링'이 함께 달려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쉼이 내보이기 위한 장면으로 바뀌고, 남의 '1분 전' 게시물을 자기 삶의 성적표처럼 읽기 시작하는 순간 거울은 독이 된다. 필자는 작가노트에 '질투는 나의 힘, 좋아요는 나의 독사과'라고 적어 두었다. 동화 속 왕비는 독을 바른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건넸지만, 오늘은 누가 건네지 않아도 비교라는 독사과를 제 손으로 베어 무는 일이 더 잦다.
다시 그림 앞에 서 보면, 여권을 쥔 채 짐을 꾸린 왕비는 그 노르웨이 사진 바깥에 벗어 던진 구두와 컵라면이 있다는 사실을 끝내 모른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남의 풍경도 대개 네모 칸 바깥에 수수한 하루를 숨기고 있다. 화면 속 완벽함에 주눅 들어 짐부터 꾸리기에는, 각자의 평범한 오늘도 충분히 소중하다. 어디로 떠나든 집에 머물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멀리 다녀오는 여행이 아닐까.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김현정 작가는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