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부는 어느 자리든 스며든다. 국이 되고, 찌개가 되고, 구이가 되고, 조림이 된다. 따뜻할 때는 부드럽게 넘어가고, 식어도 든든하게 남는다. 콩을 갈아 익히고 굳혀내는 두부는 가장 평범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정성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물과 불, 기다림이 만들어낸 한 모의 진심. 한 마을을 먹여 살렸던 두부, 수행의 의미가 깃든 두부, 가족의 시간을 이어온 두부까지 시린 겨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두부의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

■ 대전 숨두부를 아시나요? – 대전광역시 동구 가오동
두부를 만드는 날은 온 동네가 잔칫날이었다. 가마솥에서 갈비가 익어가면 맷돌에 간 콩을 듬뿍 넣어 김치와 함께 끓여낸 콩갈비탕, 두부 만들고 남은 순물(콩물)은 된장독에 부어 촉촉하게 살리고, 비지는 고기와 채소를 넣어 반죽해 비지전으로 부친다. 가오동 사람들에게 두부는 힘들었지만, 또 그 덕에 살아낸 고마운 버팀목이었다. 두부로 생계를 이어왔던 사람과, 그 맛을 다시 잇는 사람. 두부 한 모에 담긴 가오동의 추억과, 다시 피어나는 숨두부의 오늘을 따라간다.

■ 조포사(造泡寺), 두부로 공덕을 쌓다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에는 오래된 두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육식을 금하는 사찰에서 두부는 수행자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맷돌을 돌려 콩을 갈고, 콩물을 끓여 간수를 맞추는 모든 과정은 계호 스님에게 수행 그 자체다. “맷돌을 돌리는 일도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라는 말처럼, 두부를 만드는 손길에는 늘 고요한 집중이 깃들어 있다.
진관사는 조선시대 왕실 제향에 올릴 두부를 만들던 사찰, 즉 ‘조포사(造泡寺)’로 불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두부를 만드는 일을 맡아 왕실과 능에 공급하던 곳. 두부를 만드는 기술이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공양간의 지혜와 절집의 생활 속에서 두부 음식 문화가 꽃피었다. 진관사의 두부 음식은 더하는 맛이 아니라 빼는 맛으로 완성된다. 두부를 으깨 소금·후추·참기름으로 담백하게 맛을 낸 포증(두부찜), 채수와 표고로 낸 간장 물에 구운 두부를 재워 만드는 두부장아찌.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라는 말처럼 필요한 만큼만, 담백하게. 스님들에게 두부는 공덕을 쌓는 수행이자, 누군가를 위한 지극한 마음이다. ‘법 위에 밥’이라는 말처럼 삶의 바탕을 이루는 음식의 의미를 두부 한 상에 담아낸다.

■ 어머니의 두부, 맛의 기억을 잇다 –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황지동
해발 800미터가 넘는 산촌에는 긴 겨울이 먼저 찾아온다. 두부를 만들어 바깥에 내놓기만 해도 꽁꽁 얼어붙던 곳. 이곳에는 50년이 넘도록 두부를 만들어온 어머니 김옥랑(75) 씨와 그 곁에서 함께 부엌을 지키는 딸 김지미(54) 씨가 있다. 유난히 손맛이 좋았던 옥랑 씨는 이웃들의 성화에 두붓집을 열었고, 지미 씨도 자연스레 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두부 앞에서만큼은 늘 의견이 엇갈린다. 계량과 이론을 중시하는 딸과, 평생의 경험으로 몸에 밴 어머니의 방식은 좀처럼 맞지 않는다. 모녀 사이에는 콩물이 끓어오르듯 말 없는 긴장도 흐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매일 같은 부엌에 선다.
두부를 만들던 지미 씨의 아버지는 콩물이 끓을 때 생기는 얇은 막인 두유 막을 소중히 여겼다. 말려 두었다가 불에 구워 소주 한 잔 곁들이던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가족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바삭하게 구워낸 두유 막은 고소한 향과 함께 쫄깃한 식감을 더한다. 두유 막을 김치처럼 무쳐낸 별미 또한 세월 속에서 이어진 살림의 지혜다. 겨울이 깊어지면 두부는 얼었다가 녹으며 언두부가 된다. 수분이 빠져 구멍이 숭숭 난 언두부는 양념을 잘 머금어 코다리찜 위에 올리면 또 다른 별미가 된다. 된장독 속에 박아둔 두부는 시간이 지나 두부장이 되고, 그대로 으깨 끓여내면 밥을 부르는 깊은 장맛이 완성된다. 남은 비지는 밥이 되고, 나물이 되고, 또 하나의 끼니가 된다. 딸에게 엄마의 두부는 언제나 같은 맛으로 돌아오는 밥상이다. 먹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이유 없이 편안해지는 음식. 함께 싸우고, 함께 웃으며 지켜온 부엌에서 두 사람의 시간은 오늘도 조용히 익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