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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안방극장 ‘셰프 천하’…올림픽은 뒷전이었다

서정민 기자
2026-02-18 09: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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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안방극장 ‘셰프 천하’…올림픽은 뒷전이었다 (사진=각 방송사)

올림픽 시즌인데, 우리 TV는 지금 요리 중이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17~18일(한국시간),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이해인(9위·70.07점)과 신지아(14위·65.66점)가 나란히 프리스케이팅 본선 진출을 확정하며 올림픽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컬링 여자 대표팀은 세계랭킹 1위 스위스에 5-7로 패하며 4강 진입에 비상등이 켜졌다. 4승 3패로 공동 4위에 머문 대표팀은 남은 예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배수의 진을 쳤다. 메달을 향한 태극전사들의 사투가 한창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 안방극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설 연휴 내내 공중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TV 채널을 돌리는 손가락이 멈추는 곳마다 셰프가 있었고, 냄비가 끓고 있었다.

MBC ‘셰프의 DNA’에서는 배우 류수영이 전북 정읍의 식재료를 들고 벨기에 셰프와 만나 K-푸드의 새 지평을 열었고, tvN ‘백사장3’에서는 백종원이 ‘미식의 수도’ 프랑스 리옹에서 돼지껍데기와 고추장 삼겹살로 현지인들을 상대로 분전했다. MBC ‘밥상의 발견’은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과 함께 덜어냄의 미학을 조명했고, tvN STORY ‘남겨서 뭐하게’는 설 특집이라며 ‘흑백요리사2’ 출신 정호영 셰프까지 불러 한상 가득 차려냈다. 여기에 MBN 제빵 서바이벌 ‘천하제빵’까지 가세하며 명절 내내 화면은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기에는 단순히 ‘요리 프로그램이 유행’이라는 것 이상의 배경이 있다. 이번 올림픽 독점 중계권을 가진 JTBC와 지상파 3사(KBS·MBC·SBS) 사이의 갈등이 시청자들의 올림픽 접근성 자체를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JTBC는 지상파가 뉴스권 구매를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올림픽 보도를 줄이고 있다고 주장했고, MBC는 JTBC가 제공하는 영상이 하루 4분여에 불과한 데다 경기장 현장 취재도 제한돼 있어 보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JTBC는 이에 재반박하며 모든 조건이 지상파가 독점 중계할 당시의 전례를 따른 것이라고 맞섰다. ‘네 탓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정작 손해를 보는 건 올림픽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이다.

물론 요리 프로그램 자체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흑백요리사’ 시리즈가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이후 셰프는 어느새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 스타가 됐고, 방송사 입장에서 이 흐름을 타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각 프로그램 역시 저마다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콘텐츠 하나하나의 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특정 장르로 편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계권 다툼으로 올림픽 보도가 위축되고, 그 빈자리를 손쉽게 채울 수 있는 요리 포맷이 메우는 악순환이다. 

이해인과 신지아가 올림픽 첫 무대에서 나란히 본선 진출을 이뤄내는 동안, 컬링 대표팀이 메달권 사수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지상파 안방극장은 상차림에 여념이 없었다. 중계권 분쟁이 어느 쪽의 잘못이든 간에,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 몫이 됐다.

밥상은 풍성했다. 그러나 밀라노 빙판 위 선수들의 이야기를, 이번 설 연휴 안방극장은 제대로 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