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은 잘했니?”
배우 김보성이 무명 시절을 돌아보며 꺼낸 기억이다. 작은 배역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촬영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 말이 따뜻했다고 했다. 포스터를 붙이고, 연출부 일을 하고, 단역으로 출연하던 시절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던 답변은 그렇게 어머니 앞에서 울었던 장면으로 끝났다.
김보성이라는 이름에서는 으레 우렁찬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배우의 시작을 묻자, 포스터를 붙이던 손과 밤늦게 돌아오던 길, 기회를 건네준 사람들의 이름이 차례로 나왔다. ‘의리’라는 말이 그를 대표하기 전, 허석이라는 청년이 지나온 시간이다.
처음부터 배우라는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배우를 꿈꾸지 못했다고 했다.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서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쉽게 물러서지 않고 끝을 보고 싶은 근성이 그를 움직였다. 여기에 고등학교 3학년 말,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그때 얻은 교훈을 그는 “사람은 꿈과 희망을 버리면 끝”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배우로 입문한 이유에도 그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배역을 얻고 이름을 알리는 일 이전에,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 셈이다.
그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에는 오기와 서러움이 함께 있다. 연극영화과에 떨어졌어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지만, 현장의 허드렛일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친 몸으로 버티던 청년에게도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은 있었다. 그는 그 시간을 성공 뒤에 따라붙는 무용담으로만 돌려놓지 않았다. 손바닥이 벗겨진 일과 어머니 앞에서 운 기억을 함께 꺼냈다.

그 청년에게 영화 속 자리를 열어준 사람은 강우석 감독이었다. 김보성은 자신의 영화 데뷔를 이야기하며 “오직 강우석 감독님 덕분”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는 마음이다. 여러 질문에 답하는 동안에도 강 감독의 이름은 거듭 등장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봉구를 어떻게 만났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캐스팅 과정부터 설명하지 않았다. 먼저 떠오른 것은 “강우석 감독님의 은혜와 배우 김민종의 의리”였다. 배역을 얻은 경위보다 그 기회에 얽힌 사람들을 앞세운 답변이었다. 영화의 제목을 떠올릴 때 함께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는 뜻이다.
강 감독에게 받은 것은 출연 기회만이 아니었다. 배우로 살아가며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남았다.
“보성아, 관객들은 네가 액션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는 게 아니고 작품 선택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다.”
그는 훗날 안성기에게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몸으로 해내는 액션에 힘을 쏟았던 배우에게, 작품을 고르는 안목까지 생각하게 한 말이다.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서로 다른 문제였다. 그 조언은 이후 자신의 배역을 돌아보는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1996년 개봉한 ‘투캅스2’의 이 형사는 그에게 스타로서의 존재감을 안겨준 배역이다. 김보성은 자신이 맡았던 인물 같은 경찰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더 편안해질 것 같다고 했다. 역할에 대한 애정은 분명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을 만큼 마음이 남아 있다.
동시에 성공 뒤의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배역의 인상이 강렬했던 탓에 이후 다양한 역할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자신을 알린 작품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배우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좁아진 점은 돌아보게 됐다. 작품의 선별과 배역의 선택을 두고 아쉬움이 있다는 고백에는 강 감독의 조언이 다시 겹쳐진다.
그렇다고 그 배역을 잘못된 선택으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훗날 명예경찰 활동과 의리 캠페인 등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얻은 것과 놓친 것을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에게 이 형사는 지나간 흥행작의 주인공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 20편, 드라마 10편 주인공을 했는데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연기 이력을 돌아보던 그는 이런 속내도 털어놓았다. 대중에게 선명하게 남은 이미지가 있다는 것은 배우에게 큰 자산이다. 그만큼 다른 작품에서 보낸 시간이 가려질 때의 아쉬움도 있다. 김보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익숙한 구호 너머로, 더 많은 배역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배우의 마음이 보인다.

허석과 김보성이라는 두 이름에는 그 시간이 나란히 담겨 있다. 그는 본명 허석으로 28년, 예명 김보성으로 28년을 살았다고 했다. 쉰여섯 살이 됐을 때 두 이름을 합쳐 본명을 바꾸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키워준 본명과 배우로 살게 해준 예명, 어느 쪽에도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무명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고마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도 강우석 감독을 꼽았다. 설이나 추석이면 강 감독에게 인사를 올린다는 답이다. 그에게 감사는 데뷔 당시를 회상할 때만 꺼내는 감정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인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젊은 자신에게 한마디를 건네달라는 부탁에는 몸을 너무 함부로 썼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는 스스로 단순했고 안전에 둔감했다고 했다. 눈과 코를 비롯해 얼굴과 몸에 남은 부상을 떠올리며, 예전의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도 했다. 청춘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는 그 시절의 무모함을 아는 나이가 된 사람의 솔직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의리의 사나이가 돼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의리는 목소리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표현으로는 사랑하는 법이자 도리다. 자신이 받은 마음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김보성의 청춘을 따라가다 보면 ‘의리’라는 익숙한 말에 조금 다른 표정이 생긴다. 현관 앞에서 울던 아들, 기회를 준 감독에게 여전히 인사하는 후배, 더 다양한 배역을 바랐던 배우의 얼굴이다. 허석이 김보성으로 살아온 시간에는 그 얼굴들이 함께 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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