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속 인물은 화려한 족두리를 쓰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핏빛으로 일렁이는 하늘과 물결치듯 휘어진 다리는 뭉크의 원작 구도를 그대로 옮겨왔지만, 색은 한지 위에 먹과 담채로 다시 스몄다. 다리 저편에는 몸이 불편한 듯한 어른과 아이를 업은 이, 지팡이를 짚은 노인까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행렬이 화면 한쪽을 채운다.
제목의 '시월드'는 시댁을 놀이공원에 빗댄 중의적 표현이다. 놀이공원이 즐거움을 위한 공간이라면, 시월드는 웃으며 견뎌야 하는 공간이라는 씁쓸한 뜻이 그 안에 함께 담겨 있다. 다리를 건너오는 인물들은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이자 눈치가 보이는 시누이이자 돌봐야 할 아이들이며, 그림 속 인물이 감당해야 할 역할의 목록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혼인율은 눈에 띄게 낮아졌고,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선택지에서 지우는 청년들도 늘었다. 그 이유를 묻는 설문마다 경제적 부담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목이 바로 고부(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에 대한 부담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관계를 미리 걱정하고, 미디어가 그려낸 최악의 장면을 상상하며 지레 마음을 접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두었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슨트의 작품 설명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한 관람객 어머니께서, 설명이 끝나자 조심스레 손을 들고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본인이 바로 시어머니인데, 요즘은 시월드가 아니라 '며월드'가 더 무섭다는 것이었다.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고르고, 서운한 내색 한번 제대로 못 하는 시어머니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다음에는 꼭 며월드도 한번 그려달라는 부탁까지 덧붙이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서야, 필자가 이 그림을 그리며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을 마주하게 되었다. 두려움은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가족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쪽도, 그 가족을 맞아들여야 하는 쪽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를 향해 조심스러워지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시월드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며월드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방향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불안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이 그림이 유독 생생하게 읽히는 시점은 명절 직후다. 매년 명절 연휴가 끝나면 갈등 상담이 늘고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검색어에 오르내린다는 소식이 되풀이된다. 반복된다고 해서 무뎌질 문제는 아닐 텐데, 우리는 매년 비슷한 소식을 읽고 또 잊어버리기를 반복한다. 물론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역할을 나누는 집도 늘었다고 하지만, 드라마와 SNS 속에서 되풀이되는 '무서운 시어머니'와 '전전긍긍하는 며느리'의 이미지는 현실보다 앞서 마음에 자리 잡는다.
며느리가 오랜 시간 마음속에 겹겹이 쌓아왔을 불안과 인내의 시간을 은유하기 위해 전통 안료인 담채를 수없이 쌓아 올리며 배경을 완성했다. 유화 물감 특유의 두텁고 텁텁한 질감을 한국화 재료로 표현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과정인데 그 역시 인내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그저 무섭게만 읽을 필요는 없다. 참지 않고 소리 내어 본 감정은 오히려 더 가볍게 지나가는 법이다. 연휴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쉬는 이들에게, 이 화면은 그 두려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어쩌면 다리 저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 역시, 똑같이 숨죽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두려움에 귀를 막고 싶어도 우리는 매번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언젠가 이 그림의 짝으로 며느리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다면, 그때는 두 얼굴을 나란히 걸어두고 싶다. 결국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미리 두려워하도록 만든 우리 모두의 마음일까.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동양화과 학사와 동양화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현정 작가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수의 개인전과 전시 작품 완판, 6만 7402명의 국내 개인전 최다 관람객 기록 등으로 주목받았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에세이 《김현정의 내숭》, 컬러링북 《내숭이야기 컬러링북》, 《한국화를 배우는 시간: 개념편》, 《한국화를 그리는 시간: 실기편》 등이 있다. 또한 김현정 작가는 미술강연과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로서 전통 회화와 동시대 시각문화를 연결하고 있으며,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교육·집필·칼럼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글_김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