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들이 모두 잠든 뒤, 소녀는 몰래 방을 나와 TV를 봤다. 화면에서는 ‘꽃보다 남자’가 흘러나왔다. 한국어 대사를 절반쯤 알아들을까 말까 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마음은 잠들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 사람들은 왜 싸우는지. 알아듣지 못한 이야기는 그렇게 친구들의 설명으로 조금씩 채워졌다.
그 마음이 자라기 전, 카슨의 세상에는 오키나와의 바다가 있었다. 해변에서 수영하고 해양 생물을 관찰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아름답지만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해파리를 보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배웠다. 눈앞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한 날, 차창 밖 풍경은 익숙한 세상과 너무 달랐다. 복잡하게 뻗은 도로와 높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큰 도시에서 살아본 적 없던 그는 자신이 아주 작아진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엄마에게 어디든 구경하러 가자고 졸랐다. 낯선 도시가 두려운 곳에서 알고 싶은 곳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찾은 용산 아이파크몰에는 신기한 것이 많았다. 음반과 책,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구경했다. 요거트에 원하는 토핑을 골라 넣는 일도 즐거웠고, 실내에 그네가 있는 카페도 기억에 남았다. 지금 그가 떠올리는 서울의 첫인상은 거창한 명소보다 그런 작은 즐거움들에 가깝다. 이곳에서 앞으로 무엇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던 소녀의 하루였다.
하지만 생활이 시작되자 호기심만으로 넘기 어려운 문턱도 나타났다. 용산의 국제학교에서 배운 한국어였다. 한국계이거나 한국인 부모를 둔 친구들은 기본적인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카슨은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카슨이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엄마를 꼽는 이유는 단지 수업을 구해 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배우고 싶다는 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줬기 때문이다. 아직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관심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직접 방법을 찾아 줬다. 소녀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다.
“제가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직접 방법을 찾아 도와주셨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한국 드라마의 문을 처음 열어 준 작품은 엄마의 친구가 추천한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언니와 함께 첫 회부터 빠져들었다. 이후 한국에서 TV로 만난 ‘꽃보다 남자’는 매주 다음 회를 기다리게 했다. 모든 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었고, 모르는 이야기는 친구들에게 물으며 따라갔다. 드라마는 학교 밖에서도 한국어를 만나게 하는 또 하나의 시간이 됐다.
그렇게 약 6년을 한국에서 보낸 뒤 미국으로 갔다. 부모님은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딸이 그곳의 대학 생활도 겪어 보기를 바랐다. 그러나 서울의 활기와 편리함에 익숙했던 카슨에게 노스캐롤라이나의 생활은 낯설었다. 한국에서 더 해 보고 싶은 일이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은 연기와 함께 이어졌다. 어린 시절 학교 연극에 참여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모델 활동과 광고 촬영, 드라마 단역도 경험했다. 좋아하던 일을 계속해 왔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로 삼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THE K2’였다.

이 작품은 카슨이 처음 오디션을 본 한국 드라마이자 이름 있는 배역을 맡아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첫 작품이었다. 세 차례 오디션에 이어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화면 테스트도 거쳤다. 지창욱이 연기하는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상대역이었다. 제작진이 특히 자신의 눈을 유심히 살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말문이 막혔다. 이미 ‘힐러’를 통해 알고 있던 배우와 함께 연기한다는 사실이 설레면서도 걱정됐다. 실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었다. TV 속 인물들의 마음을 친구에게 물어보던 소녀가, 이제는 상대 배우와 눈을 맞추며 한 인물의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 촬영장에서 오래 남은 순간은 뜻밖에도 눈을 감고 있을 때 찾아왔다. 카슨의 인물이 죽고, 지창욱이 그를 붙잡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죽은 인물로 누워 있어야 했지만 상대의 울음과 몸짓을 생생하게 느꼈다. 감정에 몰입하며 온몸이 떨리는 모습, 때로는 촬영장을 잠시 벗어나 감정을 추스르던 모습도 기억한다.
카슨은 당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가슴 아픈 걸까? 내가 정말 저 사람의 첫사랑이었던 걸까?”
자신이 눈을 감고 있어도 다른 배우의 감정이 전해졌다. 함께 연기하는 사람이 한 인물의 슬픔을 얼마나 깊이 살아낼 수 있는지 가까이서 경험한 것이다. 그날의 기억은 유명한 배우를 만났다는 설렘보다 오래 남았다. 연기를 더 알고 싶어졌고, 자신도 더 잘하고 싶어졌다.
이후 개인 코치에게 배우고 한국의 연기 학원에 다녔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훈련을 이어 갔다. 한국어 발음과 억양을 고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치와 몇 시간씩 어려운 문장을 반복하고 볼펜을 입에 문 채 발음을 연습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인물의 마음까지 표현할 수 없었다. 연기 서적과 워크숍을 통해 인물의 관계와 행동의 이유를 공부하며, 언어와 연기 모두에 시간을 들였다.
그 시간 동안 대학생으로서의 생활도 지켜야 했다. 연세대 학업과 촬영을 병행하는 일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버거웠다. 특히 비자 교체를 위해 일본에 다녀오느라 일주일 넘게 수업을 빠졌을 때는, 한 번 더 결석하면 낙제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기 위한 절차가 정작 한국의 대학 생활을 어렵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를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학업 때문에 연기 기회를 미루기도 했고, 촬영을 위해 몇 학기씩 휴학하기도 했다. 카슨의 기억으로 졸업까지는 6~7년가량 걸렸다. 그는 연세대를 졸업한 일을 지금도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 중 하나로 꼽는다. 배우로 활동하며 학업을 끝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애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꼭 계획대로 흘러갈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웠어요.”
서울에 도착한 다음 날, 소녀는 엄마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졸랐다. 그때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몰랐다. 시간이 흘러 그곳에는 자신이 끝내 마친 학교와 함께 연기한 사람들, 직접 살아낸 배역들이 남았다. 구경하고 싶었던 도시에서, 카슨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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