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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값 43년 만에 최대 낙폭, 국내 시세도 직격탄

서정민 기자
2026-03-21 08: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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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확전 우려에도 금값이 오히려 추락하는 이례적 장세가 연출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강달러라는 이중 악재가 맞물리며 국제 금값이 1983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한 가운데, 국내 금 시세도 2% 넘게 빠지며 동반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 기준 국내 금 시세(원/g)는 226,340원으로 전일 대비 5,080원(2.2%) 하락했다. 장중 시가는 223,570원까지 밀렸으며, 3.75g 기준 시세는 84만 8,775원 수준이다. 전일 기준가(231,420원)와 비교하면 하루 새 낙폭이 상당하다. 1년 최고가인 269,810원과 비교하면 현 시세는 16%가량 낮은 수준으로, 연고점 대비 조정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날 금시세닷컴 기준 순금(3.75g) 판매가는 84만원으로 전일 대비 1만원 하락했다. 구매가는 98만 9,000원으로 2만 1,000원 급락하며 매도·매수 간 스프레드(가격 차)가 확대됐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스프레드가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불안 심리를 방증한다.

18K는 61만 9,000원(-8,000원), 14K는 48만 1,000원(-6,000원)으로 각각 내렸고, 백금 역시 판매가 34만 5,000원(-7,000원), 구매가 41만원(-1만 4,000원)으로 약세를 보였다. 반면 은(銀)은 판매가 기준 1만 4,000원으로 500원 오르며 상대적 강세를 나타냈다.

국제 시장에서의 충격은 더 컸다.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금 현물 가격은 20일(현지시각) 전장 대비 3.2% 하락한 온스당 4,501.70달러를 기록했다. 이번 주 하락폭만 11%에 달해 1983년 이후 가장 큰 주간 낙폭을 새로 썼다. 지난달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신고가를 경신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새 누적 하락률이 14.2%에 이른다.

통상 전쟁은 안전자산 수요를 자극해 금값 상승의 촉매가 되지만, 이번 이란 전쟁은 반대의 공식이 작동하고 있다. 이란·이스라엘 간 교전과 미군의 중동 증파, 쿠웨이트 정유시설 공습 등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금은 ‘전쟁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역설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금값 급락의 핵심 원인은 ‘금리’와 ‘달러’다.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졌고,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를 사실상 소멸시켰다. 브렌트유는 20일 배럴당 112.19달러로 3.3% 급등했고, WTI는 98.32달러로 2.3% 올랐다.

연준의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마저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금리 인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시장 일각에서는 다음 FOMC에서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4.39%까지 올라 이자를 창출하지 못하는 금의 기회비용을 끌어올렸다.

강달러 기조 역시 국제 금 수요를 옥죄었다. 달러 인덱스는 전쟁 이후 2%가량 반등했으며, 달러화 가치 상승은 달러 결제 자산인 금의 체감 가격을 높여 수요를 억제하는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안전자산 수요가 금 대신 달러로 쏠린 셈이다.

강달러 여파는 국내 외환시장에도 직격탄이 됐다. 지난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넘나들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불안을 연출했다. 에너지 수입 가격 상승과 환율 불안이 맞물리는 국면이다.

한국은행도 진퇴양난이다. 이창용 총재는 앞서 금통위 후 “물가 전망 상향으로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긴축 기조를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비용 확대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한 하반기 금리 인하 시나리오는 사실상 동결 내지 추가 인상 검토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