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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⑧] 고요가 사라진 시대

김연수 기자
2026-04-03 1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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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⑧] 고요가 사라진 시대 (출처: 김현정, <내숭: 운치있다>, 114 x 59 cm,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콜라쥬, 2012.)

요즘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에게도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터의 메신저, 지인들의 연락, 끊임없이 갱신되는 지인들의 SNS 소식들, 관계를 관리하라는 압박과 자기계발의 강박 사이에서 하루는 잘게 찢긴다.

한국 사회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휴식이 아니라, 애써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 됐다. 혼자 영상을 보는 것처럼 외형적으로는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정작 자기 생각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줄었다. 쉬는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에게도 응답하지 않고 자기만의 고요를 누릴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온전히 혼자 있을 틈이 없어서, 우리는 더 지친다.

고요가 사라졌다. 〈내숭: 운치있다〉는 이런 시대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 속 여인은 한복 차림으로 변기 위에 앉아 상체를 깊게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한 희미한 벽돌 벽은 텅 빈 듯 고요하고, 그 아래 작게 놓인 인물은 마치 세상 끝에서 겨우 찾아낸 자기만의 틈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보다 절실하다. 여인은 온전한 고요를 찾아 들어온 것이 아닐 수 있다. 손에 든 스마트폰은 연결의 도구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선택한 것만 보고 있다.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일방적 수신, 그것이 여인이 선택 가능한 최선의 단절인 것이다. 나는 그 불완전한 피신을 ‘운치 있다’고 부르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가장 운치 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원래 ‘운치 있다’는 말은 자연의 정취나 풍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 표현을 가장 비정취적일 것 같은 장소에 붙였다. 변기 위가 세상에서 가장 운치 있는 자리라니,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농담이 아니라 적확한 시대 진단이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거리에서도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말에 답해야 하고, 어디선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자신을 보여야 하며, 심지어 쉬는 순간조차 생산적으로 보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을 잠글 수 있고, 잠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화장실이야말로 현대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개인의 방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중요한 오브제는 화장실과 스마트폰이다. 화장실은 가장 고요한 방이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마지막 피난처가 된다. 스마트폰은 세상과 연결되는 기계로서 어디든지 침범할 수 있다는 보여준다. 문을 닫아야만 겨우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현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세대가 처한 정서적 구조다. 사생활은 넓어진 듯 보이지만, 정작 사적인 시간은 가장 비좁은 칸 안에서만 간신히 확보된다.

한복 또한 이 작품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든다. 〈내숭 시리즈〉는 전통 수묵담채와 콜라주, 한복의 질감과 투명한 치맛자락을 통해 동시대의 생활을 낯설게 비추어 왔다. 가장 단정한 외형 안에 가장 솔직하고 민망한 현실을 밀어 넣으며, 겉과 속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이 이 연작의 핵심이다. 그렇게 보면 〈내숭: 운치있다〉의 한복은 단지 아름다운 의상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가 현대인에게 요구하는 단정함, 멀쩡함, 괜찮은 척의 표정에 가깝다. 곱게 차려입고 있어도 실은 지쳐 있고, 우아해 보여도 사실은 잠깐 숨을 곳을 찾는 상태. 이 그림은 그 이중성을 품위 있고 예리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언제부터 창밖 풍경이나 산책의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문 잠긴 칸막이 안에서야 겨우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내숭: 운치있다〉는 품위 있게 차려입은 한 인물을 통해 묻는다. 혼자 있을 시간이 부족한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까. 그리고 가장 은밀한 곳이 가장 운치 있는 곳이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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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이 그린 한국의 초상⑧] 고요가 사라진 시대 (출처: 김현정)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국의 초상’이라는 시선으로 그려 왔다. EBS ‘해요화 해요’에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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