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 유예’ 발언 한 마디에 10% 넘게 폭락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드러냈다. 뉴욕증시는 안도 랠리를 펼쳤지만,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0달러10센트(10.28%) 내린 배럴당 88달러13센트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14%대 급락을 기록하기도 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약 2주 만에 처음으로 100달러 아래로 내려앉았다.
다만 이란은 협상 사실을 부인했다. 이란 외무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미국과의 협상이나 대화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고, 이란 언론은 이번 제스처를 “미국이 꽁무니를 뺀 것”이라고 비난했다. 진위를 둘러싼 설전이 이어지는 사이에도 시장은 유예 발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반등했다.
유가 급락 소식에 뉴욕증시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31.06포인트(1.38%) 오른 4만6208.53에 마쳤고, S&P500은 74.52포인트(1.15%) 오른 6581.00을, 나스닥종합지수는 299.15포인트(1.38%) 뛰어오른 2만1946.76을 각각 기록했다. S&P500 11개 업종이 모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가 하락 수혜주인 유나이티드항공·아메리칸항공이 3~4% 뛰었고 노르웨이크루즈는 6.2% 급등했다. 테슬라 3.5%, 아마존 2.38%, 애플 1.4%도 오름세를 기록했다.
이번 위기의 심각성은 국제기구도 인정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22일 “이번 위기는 1970년대 두 번의 석유 파동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천연가스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동 지역 9개국에 걸쳐 최소 40개의 에너지 자산이 심각하게 손상됐다”며 “세계 경제는 매우 중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개전 이후 두 번째로 유가 전망을 상향했다. 호르무즈해협 물동량이 6주간 평시 대비 5%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며 올해 WTI와 브렌트유 예상 평균가를 각각 배럴당 79달러·85달러로 높여 잡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란이 당장 호르무즈해협을 완전 개방하더라도 석유 공급이 정상화되려면 4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관세청의 ‘3월 1∼20일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해당 기간 원유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8% 급증했고, 에너지 전체 수입액도 18.8% 늘었다. 원유 수입액은 1월 43억달러, 2월 44억달러, 3월 47억달러로 증가폭을 키워가는 추세다.
원·달러 환율은 23일 16.7원 오른 1517.30원까지 치솟으며 17년 만에 최고치에 육박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포인트 상승하면 소비자물가에 대한 전가효과는 단기 0.28%포인트에 달하며, 환율이 3개월 이상 유지되면 장기적으로 물가 오름폭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375.45포인트 내린 5405.75에 마감했고, 외국인은 23일 하루에만 4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 외국인 보유율은 8개월 만에 50% 아래로 내려갔다.
금리 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마저 흔들렸다. 23일 KRX 금 시장에서 국내 금 시세는 전날보다 7.87% 하락한 1g당 20만8530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달 2일 마진콜 쇼크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에다 차익 실현 매물까지 겹친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