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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女 대표팀, 8년만 금메달

서정민 기자
2026-02-19 06: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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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女 대표팀, 8년만 금메달

김길리(성남시청)가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2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은 19일(한국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4분04초014의 기록으로 개최국 이탈리아(4분04초107)와 캐나다(4분04초314)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이후 꼭 8년 만의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탈환이다. 올림픽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통산 7개로 늘리며 ‘계주 최강국’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이번 대회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최가온(세화여고)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금메달이자 빙상 종목 첫 금메달이다. 한국은 이로써 금2·은2·동3, 총 7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목표로 세운 TOP 10 진입에 한층 다가섰다.

최민정·김길리(이상 성남시청)·노도희(화성시청)·심석희(서울시청). 역사에 이름을 새긴 ‘사총사’ 모두가 주연이었다.

한국 1번 주자 ‘에이스’ 최민정이 빠른 스타트로 선두를 꿰찬 가운데 레이스는 초반부터 긴장감이 넘쳤다. 24바퀴를 남기고 캐나다에 선두를 내줬고, 20바퀴를 앞두고는 3위까지 내려앉았다.

결정적인 변수는 16바퀴를 남기고 발생했다. 디펜딩 챔피언 네덜란드가 코너에서 캐나다와 충돌해 미끄러진 것. 바로 뒤따르던 최민정이 자칫 함께 넘어질 뻔했지만, 특유의 연륜과 균형 감각으로 영리하게 위기를 피해냈다. 네덜란드가 탈락하며 이후 레이스는 캐나다·이탈리아·한국의 삼파전 양상으로 좁혀졌다.

결승선 5바퀴를 남기고 역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심석희가 최민정의 등을 힘껏 밀어붙이며 캐나다를 제치고 2위를 탈환한 것. 2018 평창 금메달을 함께 목에 걸었던 심석희와 최민정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빙판 위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바통을 건네받은 ‘막내 겸 엔딩 요정’ 김길리의 차례가 왔다. 결승선 2바퀴를 남겨두고 김길리는 특유의 폭발적인 속도로 인코스를 공략, 선두를 달리던 이탈리아의 폰타나를 따돌리고 선두로 치고 나갔다. 단독 질주하는 ‘람보르길리’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김길리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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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女 대표팀, 8년만 금메달

레이스를 마친 김길리는 언니들에 둘러싸여 그간 참았던 눈물을 속시원히 쏟아냈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김길리를 바라보던 심석희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최민정은 밝게 웃으며 후배를 꼭 껴안았다.

우승 직후 JTBC와의 인터뷰에서 김길리는 “솔직히 기억도 안 난다. 앞만 보고 달렸다. 언니들이 든든하게 버텨준 덕분에 나도 힘내서 탈 수 있었다. 꿈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언니들과 오랜 기간 합을 맞췄고, 나를 믿어준 덕분에 잘 탈 수 있었다”며 공을 선배들에게 돌렸다.

이번 금메달이 더 값진 이유는 김길리가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많은 불운을 딛고 이뤄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대회 첫 종목인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앞서 달리던 미국의 커린 스토더드가 넘어지며 김길리를 덮쳤다. 부상은 피했지만 팀의 결승 진출이 좌절됐고, 뒤이은 여자 500m에서도 준준결승 탈락의 쓴맛을 봤다. 여자 1000m 준결선에서도 고의 반칙에 피해를 입어 펜스와 강하게 충돌했지만, 어드밴스를 받아 결선에 올라 동메달을 목에 거는 저력을 발휘했다.

불운의 징크스는 이미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2025년 하얼빈 아시안게임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가 중국의 궁리와 충돌해 한국을 4위로 추락시킨 악몽이 있었다. 그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달린 이번 올림픽 계주 결승. 김길리는 가장 빛나는 순간에 가장 빠른 속도로 그 무게를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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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女 대표팀, 8년만 금메달 (사진=연합뉴스)

이번 계주 금메달은 최민정에게도 역사적인 메달이었다. 통산 6번째 올림픽 메달로 사격 진종오, 양궁 김수녕,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이 공유해온 동·하계 올림픽 한국 최다 메달 기록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또한 금메달 4개로 쇼트트랙 레전드 전이경과 함께 한국 동계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을 썼다.

최민정의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21일 여자 1500m에 출전한다. 2018 평창, 2022 베이징에 이어 3연패에 도전하는 최민정의 주종목이다. 금메달을 추가하면 양궁 김우진의 동·하계 올림픽 한국 최다 금메달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메달만 따도 한국 선수 최다 메달의 새 역사를 쓴다.

서정민 기자